삼성생명 시니어보험 개편과 안세영의 황금기, 노년을 대비하는 마음의 기술

오늘 아침 뉴스 화면을 스치던 두 개의 제목이 이상하게 겹쳐 보였다. 하나는 "삼성생명, 시니어 건강보험 개편…폐렴·로봇 인공관절수술 보장 확대"라는 소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안세영(삼성생명) 역대 여자 단식 최다 우승"이라는 배드민턴 소식이었다. 같은 회사 이름이 붙은 두 기사가 전하는 온도는 참 달랐다. 하나는 폐렴과 관절, 장기요양이라는 노년의 몸을 이야기하고, 다른 하나는 세계 정상에서 날아오르는 스무 살의 몸을 이야기한다.

삼성생명이 오는 21일 '삼성 시니어대표건강보험 종합보장형'과 'LTC통합치료형' 두 상품을 출시한다고 20일 밝혔다. 지난 7월에 이어 시니어 라인업을 개정하는 것인데, 폐렴과 로봇 인공관절수술 보장을 강화한 것이 핵심이다. 같은 날 코스피가 2%대 급락하는 가운데 삼성생명 주가도 1.02% 내렸다는 소식이 함께 전해졌으니, 시장은 이 상품 개편을 아직 큰 그림으로 읽지 않는 듯하다. 사실 확인의 차원에서 덧붙이자면, 이번 개정 상품의 구체적 보장 한도나 보험료 수준은 아직 공개된 범위가 제한적이어서 세부 내용은 확인이 필요하다.

나는 이 장면이 낯설게 다가왔다. 보험상품 개편이라니, 지극히 시장적인 기사 아닌가. 그런데 폐렴과 인공관절, 장기요양이라는 단어들을 곱씹다 보면 이것이 결국 "사람이 어떻게 늙고 어떻게 아플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옆에 스무 살 안세영의 셔틀콕이 날아오른다. 한 회사 안에 이렇게 다른 두 개의 시간이 공존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초상인지도 모르겠다.

지팡이와 라켓 사이, 우리가 저축하는 것은 시간이다

보험이라는 제도는 참 기묘하다. 지금 내는 돈으로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아픔을 산다. 동양철학의 언어로 옮기면 이것은 '미래의 나'와 맺는 약속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 보험을 금융상품으로만 이해한다. 수익률과 보장 범위, 갱신 주기와 해약환급금.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훨씬 오래된 인간의 정서가 깔려 있다. 바로 '유한함에 대한 불안'이다.

장자(莊子)는 인간의 이 불안을 정면으로 응시한 사상가다. 그는 아내가 죽었을 때 곡을 하지 않고盆(동이)을 두드리며 노래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이 일화를 '야속하다'고 읽을 수도 있지만, 장자의 요지는 다른 데 있다. 삶과 죽음은 하나의 흐름이며, 그것을 억지로 붙잡으려 할 때 오히려 고통이 커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시니어보험에 가입하는 마음 한켠에는 "늙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고, 다른 한켠에는 "아프면 어쩌지"라는 공포가 있다. 보험상품은 이 두 마음을 동시에 달래주는 장치인 셈이다.

흥미롭게도 삼성생명이 이번에 강조한 보장 항목이 폐렴과 '로봇 인공관절수술'이라는 점은 상징적이다. 폐렴은 노년의 몸이 가장 자주 마주하는 급성 질환이고, 무릎 관절은 평생 걸어온 세월의 청구서다. 그리고 그것을 '로봇'이 수술한다. 인간의 세월을 기계가 보수해 주는 시대. 여기에 안세영의 라켓이 겹쳐지면 그림이 완성된다. 우리는 한쪽에서는 몸을 극한까지 단련해 정상에 서고, 다른 한쪽에서는 몸의 마모를 기계로 메운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문명 안에서 일어난다.

유가(儒家)의 눈으로 보면 이 대비는 다른 방식으로 읽힌다. 공자는 효(孝)를 단지 부모를 봉양하는 일로 좁히지 않았다. 논어 위정편에서 자유가 효를 묻자 공자는 "지금 효라고 하는 것은 능히 기르는 것을 이른다. 그러나 개와 말도 모두 기를 수 있으니, 공경이 없으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라고 했다. 요컨대 효의 핵심은 재정적 부양이 아니라 '공경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시니어보험이 확산되는 배경에는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부모의 마음, 그리고 부모의 노후를 온전히 감당하기 어려운 자녀들의 마음이 함께 있다. 보험은 이 간극을 메우는 사회적 장치이고, 그것은 나름의 존엄을 지키려는 시도다. 다만 그 보험이 '공경'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점을 우리는 잊곤 한다.

노자는 무엇을 오래 지키라고 했는가

이즈음 나는 노자의 한 구절을 자주 떠올린다. 오늘의 화두와 놀랍도록 정확히 맞닿아 있는 말이다.

天長地久 — 「道德經 7장」

천장지구

하늘과 땅은 오래간다.

노자는 이 구절에 이어 하늘과 땅이 오래가는 까닭을 설명한다. 그것은 자기를 위해 살지 않기 때문이다(以其不自生, 故能長生). 하늘과 땅은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기에 오래 존재한다는 것이다. 노자는 이어 성인(聖人)의 태도를 말한다. 자기를 뒤로 미루기에 오히려 앞서게 되고, 자기 몸을 밖으로 내놓기에 오히려 몸이 보존된다(後其身而身先, 外其身而身存)고 했다.

이 구절이 시니어보험과 무슨 상관인가 싶을 수 있다. 그러나 곱씹어 보면 참 묘하다. 우리가 노후를 대비하는 마음의 밑바닥에는 '나를 지키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그것은 자연스럽고 정당하다. 그런데 노자는 그 지킴의 역설을 이야기한다. 지키려고 애쓰는 자가 오히려 잃고, 내려놓는 자가 오히려 오래간다고. 여기서 노자가 말하는 '내려놓음'은 체념이 아니다. 자기 하나에 매달리지 않는 태도, 곧 자기중심의 좁은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노년을 대비하는 지혜 역시 여기에 있지 않을까. 보험금 액수를 늘리는 일만이 아니라, 늙어가는 자신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의 문제 말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강의실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노년의 삶을 다룬 고전을 함께 읽던 수업에서, 한 학생이 "선생님, 요즘은 100세 시대라는데 100세까지 사는 게 축복인가요, 저주인가요"라고 물었다. 나는 즉답을 피하고 그에게 되물었다. "그대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가." 학생이 웃었다. 답은 사실 그 안에 있었다.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래 사는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가 문제라는 것이다. 보험은 그 시간을 채워주지 않는다. 다만 그 시간에 찾아올 아픔의 비용을 미리 덜어줄 뿐이다.

삼성생명의 이번 개정은 시장의 논리로 보면 지극히 합리적이다. 고령 인구가 늘고, 폐렴과 관절질환은 노년의 대표적 생활질환이며, 로봇 수술은 앞으로 더 보편화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뉴스를 읽으며 다른 생각을 한다. 우리 사회가 '오래 사는 것'에 대한 준비를 보험과 의료의 언어로만 하고 있지는 않은가. 노년의 외로움, 소외, 의미 상실 같은 것들은 어떤 보험으로도 보장되지 않는다. 그 영역은 돈이 아니라 관계와 공동체가 채워야 할 몫이다. 필자 생각엔, 시니어 시장의 진짜 성숙은 상품의 정교함이 아니라 '어떻게 늙은이가 사회의 일원으로 남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데 있을 것 같다.

오늘 우리가 가입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노자의 天長地久로 돌아가자. 하늘과 땅이 오래가는 것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말을 오늘의 일상에 겹쳐 보면 이렇게 된다. 우리가 노후를 준비하며 보험료를 내는 행위는 '미래의 나'를 위한 일이지만, 만약 그것이 '지금의 나'와 '지금의 가족'을 소홀히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면 어딘가 뒤틀린 것이다. 지금의 관계를 돌보지 않으면서 미래의 안전만 사려는 태도, 그것이 노자가 경계한 자기 집착의 한 형태는 아닐까.

이 가르침이 오늘의 트렌드와 만나는 지점은 이렇다. 첫째, 보험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상품 종류가 아무리 늘어도 그것은 노년의 삶 자체를 보장하지 못한다. 둘째, 노후 준비는 개인의 재무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다. 부모와 자녀, 이웃과 공동체가 어떻게 서로를 지탱할 것인가의 문제가 그 밑에 깔려 있다. 셋째, 안세영의 황금기와 시니어보험의 확대는 한 문명의 양 끝이다. 우리는 젊음의 극한과 노년의 마모를 동시에 사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둘을 잇는 것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각자의 대답이다.

나와 학생들은 그 대답을 아직 쓰는 중이다. 보험증권 한 장으로 모든 답이 되는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하늘과 땅처럼 오래, 자기를 앞세우지 않고 살아가는 연습을 한다면, 우리의 노년은 조금 덜 두려운 것이 되지 않을까. 그것이 오늘 뉴스를 읽으며 내가 가져본 생각이다.

늘 그렇듯 강의를 마치며 남기는 한마디는 이렇다. 우리는 미래의 아픔을 위해 보험을 들지만, 지금의 마음을 돌보는 일은 어떤 상품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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