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가 세상을 읽는 법, 장자는 왜 "큰 그물"을 경계했을까

심심상인 브랜드평판 1위부터 로봇 데이터팩토리까지, 숫자가 세상을 채우는 날

2026년 10월 8일, 뉴스 화면에는 유난히 '데이터'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33개 제과제빵 브랜드의 빅데이터 1,157만 건을 분석해 심심상인(성심당)이 10월 브랜드평판 1위를 지켰다고 발표했고, 같은 날 LG전자는 로봇 학습과 운영에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관리하는 'LG데이터팩토리'를 운영하며 185개국 청소년에게 로봇 기술과 비전을 전한다고 밝혔다.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구축사업단은 국제 유전체·보건 데이터 표준 기구 GA4GH에 정회원으로 가입해 싱가포르 제14차 총회에 참가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구글이 원전 11기 규모의 전력 계약을 체결해 AI 데이터센터의 24시간 기저부하를 확보하려 한다는 보도까지 겹치면, 오늘 하루만 놓고 봐도 '빅데이터'는 산업·보건·에너지·문화를 관통하는 공통 언어가 되었다.

그런데 이 장면이 낯설게 다가왔다.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 잘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더 흐릿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요즘 무엇을 가장 많이 검색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웃으며 답을 못 한다. 검색은 했는데, 기억은 못 하는 것이다. 빅데이터의 시대는 이렇게 우리의 관심을 기록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기록하지 못한다.

기록은 남는데, 마음은 왜 흐려지는가

빅데이터를 이해할 때 가장 흔한 오해는 '많으면 정확하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동양철학은 오래전부터 '많음'과 '밝음'을 구별해 왔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少則得, 多則惑(적으면 얻고, 많으면 미혹된다)"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검색량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보가 넘쳐날 때 인간이 겪는 인식론적 피로를 정확히 짚는다. 데이터가 1,157만 건이든 1억 건이든, 그 숫자를 해석하는 주체는 결국 유한한 인간이다.

유가의 관점에서 보면 이 문제는 '배움'의 문제로 바뀐다. 공자는 학이편에서 "學而不思則罔(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다)"이라고 했다. 빅데이터는 압도적인 '學'이다. 그러나 그 데이터를 통해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즉 '思'가 결여되면 우리는 그저 미혹될 뿐이다. 심심상인이 1위라는 사실은 흥미롭지만, 그것이 이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위로받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저 순위표 한 줄로 남는다.

불교의 관점도 겹쳐진다. 법구경은 "心爲法本(마음이 모든 법의 근본)"이라고 가르친다. 데이터는 마음이 만들어낸 흔적이다. 클릭 하나, 검색어 하나가 모여 빅데이터가 된다. 그러나 그 데이터는 마음 자체가 아니라 마음의 그림자에 가깝다. 그림자를 아무리 정교하게 모아도 그림자를 만든 얼굴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불교의 오랜 통찰이다.

그렇다면 빅데이터는 쓸모없는 것인가. 아니다. 다만 그 쓸모의 경계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의료 데이터는 생명을 살리고, 로봇 데이터는 노동을 돕고, 에너지 데이터는 전력망을 지킨다. 문제는 그 데이터가 '삶의 의미'까지 대신 결정하려 할 때 생긴다. 필자 생각엔, 오늘의 뉴스들, 예컨대 구글이 원전 11기 규모 전력을 확보하려는 소식은 데이터의 힘이 이제 물리적 세계의 자원 배분까지 좌우하게 되었다는 신호로 읽힌다. 데이터는 더 이상 '정보'가 아니라 '권력'이자 '자원'이 된 것이다.

장자가 그물을 두고 한 말

이 지점에서 장자의 우화를 떠올린다. 장자는 인간이 만든 모든 도구가 결국 인간을 규정한다는 것을 날카롭게 보았다. 데이터 역시 거대한 그물이다. 무엇을 잡을지 결정하는 것은 그물의 촘촘함이 아니라, 그물을 던지는 사람의 뜻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얼마나 많이 모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잡지 않을 것인가"일지도 모른다.

큰 그물은 반드시 큰 고기를 잡지는 않는다

大網不獲小魚, 小網不獲大魚 — 「莊子」에서 전해지는 옛말로 전한다

대망불획소어, 소망불획대어

"큰 그물은 작은 물고기를 잡지 못하고, 작은 그물은 큰 물고기를 잡지 못한다."

이 구절은 출처 표기에 신중을 요한다. 문자 그대로의 원문이 장자 특정 편에 정확히 실려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필자는 '장자의 사유를 요약한 옛말'로 소개한다. 다만 그 뜻은 분명하다. 그물의 크기가 잡히는 것의 성격을 결정한다는 것, 즉 도구의 규모가 인식의 한계를 만든다는 통찰이다.

그물의 크기가 곧 세계의 크기다

빅데이터는 인류가 만든 가장 큰 그물이다. 수십억의 행동을 포착한다. 그러나 그 그물이 클수록 잡히지 않는 것이 있다. 작은 물고기, 즉 개별 인간의 우연하고 사소한 순간들은 큰 그물의 눈을 빠져나간다. 오늘 새벽 두 시에 우연히 뜬 달을 보고 울컥했던 일, 편의점에서 계산을 기다리며 문득 떠오른 옛 친구의 얼굴, 이런 것은 어떤 데이터에도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한 사람의 삶을 이루는 실질이다.

유가의 관점에서는 이 그물을 '恕(서)'의 문제로 다시 물을 수 있다. 공자는 "己所不欲, 勿施於人(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이라고 했다. 데이터로 사람을 판단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를 묻는가. 클릭 이력은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려주지만,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는 잘 알려주지 않는다. 빅데이터 시대에 '서'의 윤리가 새롭게 요청되는 이유다.

도가의 관점에서는 '무위(無爲)'가 다시 소환된다. 무위는 게으름이 아니라, 억지로 조작하지 않는 태도다. 데이터를 억지로 짜맞춰 세상을 설명하려 하지 말고, 데이터가 스스로 드러내게 두라는 것이다. 예컨대 성심당이 계속 1위를 지킨다는 사실을 억지로 트렌드로 해석하지 말고, 그저 오래 자리를 지킨다는 사실 자체를 음미할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여유로운 독자가 된다.

불교의 관점에서 보자면 '집착(執着)'의 문제다. 빅데이터는 우리에게 "더 많이 알면 더 안전해진다"는 환상을 심는다. 그러나 법구경이 "心爲法本"이라 한 것처럼, 마음이 먼저 흔들리면 아무리 많은 정보도 우리를 붙잡아주지 못한다. 오히려 정보의 과잉은 불안의 과잉으로 이어지기 쉽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뉴스 피드에서 순위표와 계약 규모와 할인 이벤트를 동시에 보며, 이것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 정보였는지 자문했다.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하나 있다. "데이터를 읽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자기 마음을 읽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말은 나 자신에게도 유효하다. 데이터는 거울이 아니다. 데이터는 창문이다. 창문을 통해 세상을 보되, 창문 자체를 세상으로 착각하지 않는 훈련이 필요하다.

오늘의 뉴스가 우리에게 남기는 배움은 이렇다. 첫째, 데이터는 크기가 아니라 질문의 방식이 중요하다. 둘째, 데이터가 잡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이 데이터를 잘 쓰는 일이다. 셋째, 데이터 너머의 사람을 잊지 않는 것이 결국 데이터를 사람을 위해 쓰는 일이다.

그물을 던지기 전에 무엇을 잡지 않을지 묻자

빅데이터의 시대에 우리가 진짜 배워야 할 것은 아마도 '덜 잡는 법'일지 모른다. 그물을 크게 만들수록 놓치는 것을 세는 훈련,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인문학의 몫이 아닐까. 그물을 던지기 전에, 나는 오늘 무엇을 잡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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