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농협은행의 포용금융과 엔화예금, 그 두 얼굴을 노자로 읽는다

9월 17일 아침, NH농협은행 관련 기사 두어 개가 나란히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어제(16일) 서울 중구 본사에서 강태영 은행장과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최영승 이사장이 '법무보호대상자 생활안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2억 원을 지원한다는 소식이다. 다른 하나는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달러예금 잔액이 지난 15일 기준 691억 5천만 달러로, 지난달 말 763억 4천만 달러에서 보름 만에 71억 9천만 달러 줄었고, 그 자리를 엔화예금이 파고들고 있다는 환테크 기사였다. 같은 은행 이름이 하루의 신문 위에서 이렇게 다른 온도로 등장한다. 한쪽은 출소자의 첫 달 월세를 걱정하고, 다른 쪽은 환율 0.1엔의 향방을 다툰다.
하루의 신문 위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창구
기사를 정리해 두자. 첫째, NH농협은행은 9월 16일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과 협약을 맺고 법무보호대상자의 자립을 위해 2억 원을 지원한다. 강태영 은행장과 최영승 이사장이 직접 서명한 '포용금융' 실천의 현장이다. 둘째, 인천시 제2금고(약 2조 원 규모)에는 NH농협은행이 단독 신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인천 제1금고(일반회계·기금 등 약 15조 원)는 신한과 하나가 맞붙는다. 이른바 '17조 인천 곳간'의 주인이 오늘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외환 시장에서는 엔화예금이 급증하는 흐름 속에 달러예금이 빠르게 줄고 있다. 세 기사는 은행이라는 한 몸에서 나온 서로 다른 세 개의 얼굴이다.
그런데 이 장면이 낯설게 다가왔다. 같은 기관이 한 손으로는 재소자 출소자의 정착금을 쥐여주고, 다른 손으로는 환율의 미세한 진폭을 계산한다. 어느 쪽이 진짜 모습일까. 어쩌면 둘 다일 것이다. 아니, 둘 다여야만 하는 것이 은행이라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돈의 강물은 왜 한쪽으로만 흐르는가
동양고전에서 물은 늘 도(道)의 상징이었다.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여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고 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의 자본이라는 물은 정반대로 흐른다. 더 높은 수익률을 향해, 더 안전한 담보를 향해, 더 빠른 회전을 향해 흐른다. 낮은 곳에 머무는 일이 없다.
법무보호대상자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다. 출소 후 신용등급은 바닥이고, 주거는 불안정하고, 은행 창구에서 받는 시선은 곱지 않다. 이들에게 2억 원을 지원하고 협약을 맺는다는 것은, 자본의 물줄기를 일부러 낮은 곳으로 틀어보려는 시도다. 노자식으로 말하면 자본의 본성에 역행하는 일이다. 그래서 '포용금융'이라는 말은 참 역설적이다. 은행은 원래 포용하지 않도록 설계된 기계이기 때문이다.
반면 환테크의 물줄기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달러가 빠지고 엔화가 들어오는 것은 시장의 이치 그대로다. 누구도 억지로 시키지 않았다. 그저 금리와 환율이라는 중력이 사람들의 손가락을 움직였을 뿐이다. 여기에 도덕적 비난을 얹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다만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왜 자본의 자연스러운 흐름은 늘 이미 부유한 쪽으로 기울고, 가장 필요한 쪽으로 흐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협약'이라는 인위적 장치가 필요한가.
맹자는 이 지점에서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말했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면 누구든 놀라 달려가 손을 내민다는 것이다. 그 마음은 계산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익을 따져서 나오지도 않는다. 그런데 자본의 논리는 정확히 그 반대로 작동한다. 손을 내밀기 전에 신용등급을 조회하고, 담보를 확인하고, 부실률을 계산한다. 측은지심과 리스크관리는 같은 인간의 머릿속에서 서로 다른 회로를 타고 흐른다.
그렇다면 농협은행이 추구하는 포용금융은 어떤 회로에 속하는가. 진심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고, 사회공헌 실적표를 채우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인지 외부에서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오래 강단에서 학생들을 보며 배운 것은, 사람도 기관도 행위가 반복되면 그 행위가 인격이 된다는 사실이다. 매년 같은 협약이 반복된다면, 그때는 그것이 그 은행의 성품이 되는 것이다.
上善若水, 그 물은 어디로 흐르는가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 「道德經 8장」
상선약수 수선리만물이부쟁
가장 선한 것은 물과 같으니,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리스크 관리와 측은지심 사이에서
노자가 이 말을 한 맥락은 정치였다. 당시 제후들은 서로 영토를 다투고 백성을 착취했다. 노자는 그들에게 '다투지 않는 물'을 본보기로 내밀었다. 물은 자기 자리를 낮추면서도 결국 바다에 이르고, 무엇과도 다투지 않으면서도 만물을 기른다. 이것은 약함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강함이다. 억지로 밀어붙여 이기는 것이 아니라, 흐르게 두어 결과를 얻는 방식이다.
이 구절을 오늘의 은행 창구에 포개보자. 법무보호대상자에게 2억 원을 지원하는 일은 노자가 말한 물의 흐름에 가깝다. 이윤이 나지 않는 곳으로 자원을 흘려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 엔화예금으로 자금을 옮기는 개인 투자자들의 행동도 물의 흐름이다. 다만 그 물은 더 높은 이자를 찾아 흐른다. 두 물줄기 모두 '다투지 않음'의 형태를 띠지만, 향하는 방향은 정반대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선과 악의 구분이 아니다. 물의 지혜는 본래 어디로 가야 한다는 규범을 담고 있지 않다. 오히려 '지금 어디로 흐르고 있는가'를 직시하게 만든다. 자본은 늘 자연스럽게 흐른다. 그런데 자연스러운 흐름이 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강물이 자연스럽게 낮은 곳으로 흘러 마을을 삼킬 수도 있다. 그래서 둑을 쌓고 보를 세운다. 포용금융은 자본의 강에 놓인 인공 둑 같은 것이다. 인위적이라는 이유로 비웃을 일이 아니다. 우리 몸에도 자연 면역만으로는 부족해서 백신이라는 인위적 장치를 맞지 않는가.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자주 드는 예가 있다.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앞사람이 지갑을 못 찾아 허둥댈 때, 뒤에 줄 선 우리의 첫 반응은 무엇인가. 대개는 짜증이다. 그런데 그 짜증이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 누군가는 조용히 자기 카드를 대신 긁어준다. 그 순간이 측은지심이 이익 계산을 이긴 지점이다. 은행의 사회공헌도 이와 닮았다. 시스템은 원래 짜증 나게 설계되어 있지만, 그 시스템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따금 카드를 대신 긁어주는 것이다. NH농협은행의 2억 원이 그런 카드 긁기라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지켜봐야 하는가
오늘의 두 기사를 나란히 놓고 보면 이런 질문이 남는다. 자본은 어디까지 자연스러워야 하고, 어디부터 인위적으로 틀어야 하는가. NH농협은행이라는 한 기관이 이 질문의 양쪽 끝에 동시에 서 있다. 어느 쪽이 더 '진짜' 농협의 얼굴인지는 시간이 답할 것이다.
독자에게 남기는 질문 하나. 우리 각자의 돈도 매일 어딘가로 흐르고 있다. 그 물줄기가 지금 어느 방향인지, 한 번쯤 돌아보면 어떨까. 더 높은 이자를 향해 흐르는 것도 지혜지만, 이따금 낮은 곳으로 흘려보내는 것도 지혜다. 노자가 말한 물은 두 방향 모두를 품는다. 그 균형을 잡는 일이 결국 우리 모두의 숙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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