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와 함께 온 가을, 하버드를 마다한 선택에서 읽는 배움의 참뜻

가을 학기가 시작되는 9월의 캠퍼스에는 늘 새로운 얼굴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한 학생의 선택이 눈에 들어왔다. 베트남 출신의 호앙 흐엉 지앙(Hoang Huong Giang) 학생이 하버드와 예일 등 미국 아이비리그, 그리고 서울대까지 제쳐두고 KAIST를 최종 선택해 2026년 가을학기 신입생이 되었다는 소식이다. '천재 소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지만, 정작 궁금한 것은 그 이유였다.
같은 날 다른 뉴스에서는 KAIST 인공위성연구소와 쎄트렉아이가 함께 개발한 초소형 군집위성이 누리호를 타고 우주로 올라간다는 보도가 나왔다. 흑백 1m급, 컬러 4m급 고해상도 영상으로 한반도와 주변 해역을 고빈도로 관찰한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한 청년의 선택이, 다른 한쪽에서는 '무엇을 하늘로 올릴 것인가'라는 국가적 프로젝트가 같은 이름 위에 놓여 있다.
하버드를 마다한 소녀, 그 선택의 무게
우리는 흔히 '더 좋은 학교'라는 서열을 머릿속에 그린다. 아이비리그, 명문대, 최상위권. 이런 언어들이 우리의 선택을 지배한다. 그런데 지앙 학생은 그 서열 바깥의 언어로 결정을 내린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보도만으로 단정할 수 없다. 학교 측 입장이나 본인의 구체적 동기가 더 공개되어야 확인이 가능하다.
다만 우리가 곱씹어볼 지점은 이것이다. 과연 '어디에 서 있는가'가 중요한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가 중요한가. 동양의 오랜 지혜는 이 물음에 대해 의외로 시원한 답을 준다. 이름과 자리보다 그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이루고 있는가를 보라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입시와 취업, 이직의 장면에서도 그대로 되살아나는 질문이다.
이름값과 실속 사이에서 흔들리는 우리
사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이 병을 앓고 있다. 좋은 회사, 좋은 직함, 좋은 출신. 그 이름이 나를 설명해줄 것이라는 기대. 그러나 그 기대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름은 나를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아무리 화려한 간판 아래 서 있어도, 아침에 눈을 뜨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장자(莊子)는 이름[名]이라는 것이 실질[實]에 딸린 손님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름이 먼저 있고 실질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실질이 있어야 이름이 그 위에 얹힌다는 것이다. KAIST를 택한 그 학생의 결정도 어쩌면 이 순서를 되찾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간판이 먼저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연구와 배움이 먼저. 필자 생각엔, 그게 진짜 이유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조심할 것이 있다. 이것을 '이름을 초월한 순수한 선택'이라는 미담으로 포장하면 곧잘 다른 함정에 빠진다. 어떤 선택이든 그것은 조건과 맥락 속의 결정이다. 청년의 결단을 미화하기보다, 우리 자신이 매일 하는 크고 작은 선택들 속에서 이름과 실질의 순서를 점검해보는 편이 낫다.
이름은 손님이요, 실질은 주인이다
名者, 實之賓也 — 「莊子·逍遙遊」
명자, 실지빈야
"이름이란 실질의 손님이다."
이 구절은 장자가 혜자(惠子)와 이야기를 나누며 한 말로 전해진다. 혜자가 커다란 박[瓠]을 쓸모없다 하며 깨뜨리려 하자, 장자는 그 박으로 큰 배를 만들어 강호를 떠도는 상상을 펼친다. 사물의 쓸모를 재단하는 잣대 자체를 흔들어버리는 대목이다. 여기서 '이름'은 단순히 명성이 아니라, 세상이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게 붙여놓은 규격화된 자리표이기도 하다.
한자를 풀어보자. 名(이름 명)은 저녁[夕]에 입[口]으로 부르는 소리에서 나왔다고 본다. 어두워져 서로를 확인하려 부르는 것이 이름의 출발이다. 實(열매 실)은 집[宀] 안에 재물[貝]이 가득한 모습이다. 안이 알차야 실(實)이라 한다. 賓(손님 빈)은 집에 찾아온 손님이다. 그러니 名者實之賓也는 이런 뜻이 된다. '이름이란 알찬 속이 있어야 찾아오는 손님일 뿐'이라고.
채워진 안이 이름을 부른다
이 구절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가르침은 분명하다. 손님을 먼저 청하려 애쓰지 말고, 주인을 제대로 세우라는 것이다.
가령 취업 준비를 하는 학생을 떠올려보자. 스펙이라는 손님을 부르기에 급급해 자기의 실질을 비워둔다면, 그 이름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반대로 무언가를 진짜로 파고들어 자기 안을 채운 사람은 서류와 면접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 사람의 이력서에는 이름이 아니라 흔적이 남는다.
혹은 매일 아침 자신의 업무를 살펴보자. 오늘 내가 한 일 중 얼마나 '이름을 위한 일'이고, 얼마나 '실질을 쌓는 일'인가. 회의에 몇 번 참석했는가보다, 무엇을 실제로 바꾸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이 물음 하나가 하루의 무게를 바꾼다.
우주로 올라간 위성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언론에 비친 이름은 '누리호'와 '초소형 군집위성'이지만, 실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수많은 연구자가 오랜 시간 쌓아올린 안이다. KAIST 인공위성연구소가 개발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결국, 한 나라의 우주 역량이 이름이 아니라 땀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앙 학생의 선택도, 위성의 발사도, 같은 문법으로 읽힌다. 안을 채운 사람과 조직에게 이름은 나중에 따라온다.
강의실에서도 이 원리는 늘 통한다. 시험 점수를 좇는 학생보다 궁금한 것을 진짜로 파고든 학생이 결국 멀리 간다. 시작은 초라할 수 있다. 그러나 안이 채워지면 이름은 저절로 찾아온다.
오늘 우리가 안을 채워야 할 자리
결국 오늘의 두 소식이 우리에게 남기는 숙제는 하나다. 나의 안은 지금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는가. 남들이 부러워할 이름인가, 내가 스스로 쌓아 올린 실질인가. 이 질문을 품고 하루를 시작한다면, 어쩌면 우리의 선택들이 조금은 달라질지도 모른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