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 시대, 바구니에 담는 마음 — 동양고전이 묻는 '무엇을 담을 것인가'

2026년 9월 23일 ETF 열풍과 교보자산운용의 사명 변경, 54조 레버리지 논란을 장자 「제물론」의 '지지(知止)'로 읽는다. 바구니에 무엇을 담고 무엇을 담지 않을 것인가.

추석 연휴, ETF라는 바구니가 다시 소환되다

2026년 9월 23일,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시장은 조용하지만 분주하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이 연휴 전후의 일시적 테마 변동을 겨냥해 'ACE ETF 4종'을 제안했다는 소식이 오늘 눈에 들어왔다. 그중 'ACE 미국나스닥100 ETF'는 연초 이후 개인투자자 순매수액이 4954억 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숫자만 보면 거대하지만, 그 숫자 뒤에는 연휴 동안에도 쉬지 못하는 수많은 개인의 마음이 있다.

같은 날 다른 소식도 겹친다. 교보자산운용이 18년 만에 '교보악사자산운용'에서 사명을 바꾸고 독자경영 체제로 전환하며, ETF와 퇴직연금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사명 변경 당일인 9월 22일에는 SK그룹의 AI 생태계에 투자하는 '파워 SK 그룹 ETF'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54조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참극'이라는 표현이 오갔다고 한다. 상장지수펀드라는 같은 이름 아래에서, 누군가에게는 코어 자산이고 누군가에게는 참극의 언어가 된다.

이 장면이 오늘따라 낯설게 다가왔다. ETF는 본래 '여러 자산을 한 바구니에 담아 위험을 나누자'는 발명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은 위험을 나누는 도구이자, 동시에 위험을 증폭하는 도구로 동시에 기능한다. 같은 그릇이 정반대의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한 그릇에 무엇을 담는가 — 담음(包)과 나눔(分)의 오래된 긴장

ETF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구니'라는 말이다. 개별 종목 하나에 전 재산을 거는 대신, 수십 수백 개의 자산을 한 바구니에 담아 사는 것이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오래된 격언의 상품화된 형태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멈춰 생각해 볼 지점이 있다. 바구니에 담는다는 것은 곧 '무엇을 담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동양의 사유에서 '담는다(包)'와 '나눈다(分)'는 오래도록 함께 사유되어 온 짝이다. 맹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라는 네 가지 단초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다. 이른바 사단(四端)이다. 그런데 이 네 가지는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한 바구니 안에 함께 담겨 서로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인격이 된다. 한쪽만 커지면 편협해진다.

ETF 시장을 보면 정확히 그 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나스닥100, AI, 그룹주, 레버리지 — 각각의 바구니는 점점 더 좁아지고, 그 안에 담기는 위험은 점점 더 짙어진다. '분산'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다시 '집중'이 자라고 있다. 필자 생각엔, 이것은 투자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일 수도 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확실한 한 방을 원하는 마음, 남들보다 조금 더 앞서고 싶은 마음, 연휴 동안에도 뒤처지지 않을까 조바심하는 마음. 그 마음이 바구니의 종류를 바꾸고 있다.

노자는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말을 남긴다. 사람은 유한한 존재이고, 유한한 자가 무한을 다 담으려 하면 반드시 넘친다는 것이다. 담는 그릇의 크기를 아는 일이 담을 것을 고르는 일보다 앞선다. ETF의 세계에서 그릇의 크기란 곧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변동성'이고, '내 시간의 길이'이고, '내가 잃어도 삶이 무너지지 않는 액수'다. 이 세 가지를 모른 채 바구니만 키우는 것은, 크기를 모르는 그릇에 물을 붓는 일과 같지 않을까.

그릇의 크기를 아는 일은 욕망의 크기를 아는 일이다

知止其所不知, 至矣. — 「莊子·齊物論」
지지기소부지, 지의
자기가 모르는 바를 모른다고 아는 것, 그것이 지극함이다.

장자는 「제물론(齊物論)」에서 앎의 한계를 아는 것이 최고의 앎이라고 말한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착각하는 순간, 사람은 자기 그릇보다 큰 것을 담으려다 넘치게 된다. ETF라는 도구가 아무리 정교해도, 결국 그것을 고르는 것은 한 사람의 판단이고, 그 판단의 바탕에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나는 읽는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아는 그릇 — 知止가 지키는 것

장자가 말한 '지지(知止)'는 단순히 겸손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인식의 정확성이다. 바둑에서 초보는 자기가 모르는 수를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덤빈다. 고수는 자기가 모르는 자리가 어디인지 알기 때문에 한 수를 두고 오래 뜸을 들인다. 투자도 같다. 나스닥100 ETF가 연초 이후 개인 순매수 4954억 원을 기록했다는 소식은 단순히 인기 지표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내가 잘 안다'는 확신으로 그 바구니에 돈을 담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일 수도 있다.

여기서 한자를 하나 짚고 갈 필요가 있다. '지(知)'는 아는 것이고, '지(止)'는 멈추는 것이다. 두 글자가 붙은 '지지(知止)'는 '알아서 멈춘다'는 뜻이 된다. 앎은 나아가는 힘만이 아니라, 멈추는 힘도 포함한다. 대학(大學)에서도 "지지이후유정(知止而後有定)"이라 하여, 멈출 줄 안 뒤에야 자리가 정해진다고 했다. ETF를 사는 일에도 이 '멈춤'이 있어야 자리가 정해진다. 어디까지를 담고, 어디서 멈출 것인가.

일상의 예를 하나 들어 보자.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고를 때, 우리는 대개 배고픔의 정도를 먼저 확인하고 도시락을 고른다. 배가 부른데 큰 도시락을 사면 남긴다. 그런데 투자에서는 이 순서가 자주 뒤집힌다. 도시락을 먼저 보고, 그 도시락에 맞춰 배고픔을 조정한다. 남들이 그걸 사니까 나도 산다. 그 결과가 '54조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라는 말로 요약되는 참극일 수도 있다. 필자 생각엔, 레버리지 ETF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담는 그릇의 크기를 모르는 채 담는 태도가 문제다.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순서의 문제다.

교보자산운용이 ETF와 퇴직연금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SK그룹 AI 생태계에 투자하는 상품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퇴직연금은 본질적으로 '오래 담는 그릇'이다. 30대에 담아 60대에 꺼내는 것이다. 그런데 ETF의 인기 상품은 자주 '짧게 담고 빨리 꺼내는 것'을 요구한다. 같은 상품군 안에서 시간의 길이가 이렇게 다르다. 이 긴장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앞으로의 관건이 아닐까.

결국 장자의 가르침은 오늘의 ETF 열풍에 이렇게 닿는다. 그릇의 크기를 아는 일은 곧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일이고,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순간 담을 것과 담지 않을 것이 자연히 갈린다. 담지 않음을 두려워하지 말자. 담지 않는 것도 담음의 일부다. 빈 자리가 있어야 다음 계절에 새 것을 담을 수 있지 않겠는가.

오늘 담지 않은 것도 오늘의 선택이다

추석 연휴 동안, 많은 사람이 시장이 쉬는 동안에도 마음은 쉬지 못할 것이다. 나스닥은 어디까지 갈까, AI는 어디까지 갈까, 연휴 뒤에 어떤 ETF가 뜰까. 그 마음을 무어라 탓할 수는 없다. 다만 그 마음 한구석에 오늘의 질문 하나를 얹어 두면 어떨까. '나는 이번 계절에 어떤 바구니를 들고, 그 안에 무엇을 담고, 무엇을 담지 않을 것인가.'

그 질문에 정답은 없다. 다만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사람은, 적어도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는 알고 있게 된다.

그것으로 오늘은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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