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플라이언스, 한진의 AI 법률자문이 던지는 질문 — 규칙은 사람을 어디로 데려가는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울린 박수 한 번
2026년 10월 9일, 한진이 제6회 대한민국 컴플라이언스 어워즈에서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 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여러 매체에 실렸다. 시상식은 전날인 8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렸고, 주관은 한국컴플라이언스협회였다. 수상의 이유로 여러 기사가 공통적으로 짚은 것은 한진이 도입한 'AI 법률 자문 시스템'이다. 준법경영을 사람의 감(感)에 맡기지 않고, 기계의 계산에 얹었다는 것.
같은 날 다른 지면에서는 의료영상 AI의 DICOM 표준화와 보안 거버넌스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AI가 장애를 일으켰을 때 환자 안전 검토, 규제기관 보고, 시스템 복구를 임상의와 IT·보안·거버넌스·컴플라이언스 조직이 함께 감당해야 한다는 권고였다. 서로 다른 산업인데도 두 기사는 같은 단어에서 만난다. 컴플라이언스.
이 장면이 낯설게 다가왔다. 규칙을 잘 지키는 일이 이제 '사람됨'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로 번역되고 있다. 나쁜 일이 아니라, 다만 궁금해진다. 기계가 대신 지켜주는 규칙은, 사람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규칙은 왜 사람에게서 기계로 건너가는가
컴플라이언스라는 말을 곱씹어 보자. 어원을 따라가면 '함께(com) 가득 채우다(plere)'는 뜻이다. 원래는 법령·규정·윤리 기준을 조직이 충실히 이행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이 단어가 오늘 유독 무겁게 들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조직이 커지고, 규제가 촘촘해지고, 사고 한 건의 파장이 커지면, 사람의 판단 하나하나가 리스크가 된다. 그래서 사람을 시스템으로 감싼다. AI 법률 자문이 그 감싸기의 최신 형태다.
동양고전의 눈으로 보면 이 흐름은 낯익다. 순자(荀子)는 인간의 본성이 방임에 두면 흘러내리기 쉬우니, 예(禮)와 법(法)으로 길을 세워야 한다고 보았다. 한비자(韓非子)는 한 발 더 나아가, 군주가 신하를 믿는 마음에 기대지 말고 법과 술(術)로써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오늘의 컴플라이언스는 이 '법으로 사람을 묶는다'는 발상의 먼 후예다. 다만 차이가 하나 있다. 순자와 한비자는 사람이 사람을 살피는 통제를 말했다면, 지금은 사람이 기계를 통해 사람을 살핀다. 감시자가 사람에서 기계로 옮겨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이동의 동기가 불신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반대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됐다. 이해관계 앞에서, 실적 압박 앞에서, 나는 과연 규칙을 지킬 사람인가. 이 물음에 스스로 답하지 못하니 시스템을 세운다. 이건 겸손인가, 아니면 회피인가. 나는 이 대목에서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장자는 기계를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기계를 쓰는 마음을 두려워했다
장자(莊子) 「천지(天地)」편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밭에서 항아리를 들고 물을 길어 올리는 노인을 보고, 힘은 덜 들고 효과는 열 배 좋은 기계(기중기)를 권한다. 노인은 한숨을 쉬며 답한다.
물론 이 이야기를 '기계를 쓰지 말라'는 원시주의로 읽으면 곤란하다. 장자가 경계한 것은 도구 자체가 아니라, 도구를 쓰는 사람의 마음이 그 도구에 잠식되는 상태다. 기중기를 쓰면 '기계 일이 있고, 기계 일이 있으면 반드시 기계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편의가 습관이 되고, 습관이 판단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순간이 온다.
한진의 AI 법률 자문 시스템을 이 눈으로 한 번 보자. 이 시스템이 무엇을 대신 판단하는지는 나도 정확히 모른다. 다만 어떤 형태든 '이 계약 조항은 리스크가 있습니까' 하는 물음을 기계에 먼저 던지는 습관이 자리 잡으면, 사람은 서서히 스스로 묻는 힘을 쓰지 않게 된다. 기계는 대답을 빨리 준다. 다만 그 대답에 '왜'를 붙이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그 '왜'를 잃어버리는 것을 장자는 경계한 것이리라.
공자는 감시를, 순자는 세워짐을 말했다
여기서 유가의 두 갈래를 겹쳐보면 재미있다. 공자는 「논어」에서 사람을 규율로 묶는 통치를 경계했다.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 「論語·爲政」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
"법령으로 인도하고 형벌로 가지런히 하면, 백성은 벌을 면할 뿐 부끄러움은 모른다."
반대의 문장이 바로 뒤따른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 가지런히 하면 부끄러움을 알고 스스로 바르게 된다는 것이다. 공자는 규칙의 효율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규칙이 최종 심급이 되면 사람은 '안 걸리면 된다'는 계산으로 물러난다고 보았다.
한진이 도입한 AI 시스템도 결국 공자가 말한 '정(政)'과 '형(刑)'의 영역에 속한다. 걸리지 않게 막아주는 시스템이다. 훌륭한 시스템이고 상을 받을 만하다. 다만 이 시스템이 대체하지 못하는 것도 분명하다. 규칙이 왜 규칙인지, 위반이 왜 부끄러운지를 사람이 스스로 느끼는 그 지점이다. 이 지점이 비어 있으면 같은 시스템 안에서도 사람은 얼마든지 다르게 움직인다.
컴플라이언스는 결국 사람의 습관을 묻는다
나는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자주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규칙이 없어도 지킬 수 있는 규칙이 몇 개나 되느냐'고. 대부분 잠시 웃고, 이내 몇 개를 꼽는다. 그 몇 개가 사실은 사람이 사람으로 남아 있는 자리다.
AI 법률 자문 시스템은 이 자리를 대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주 묻고, 자주 확인하게 만드는 도구다. 도구는 도구로 잘 쓰면 좋다. 문제는 습관이 도구에 눌러앉는 순간이다.
오늘의 트렌드를 이렇게 정리해보면 어떨까. 컴플라이언스는 '규칙 지키기'가 아니라 '규칙을 지키는 나를 어떻게 세우는가'라는 문제라고. 감시하는 눈이 있든 없든, 나는 왜 이 계약 조항을 그냥 넘기지 않는가. 그 물음에 스스로 답할 수 있으면, 기계는 나의 곁을 지켜주는 조력자로 남는다. 답할 수 없으면, 기계는 나의 대리인이 되어 나를 조용히 비운다.
오늘의 자문을 어디에 두고 오늘을 마칠까
퇴근 무렵, 오늘 하루 나는 몇 번이나 '그냥 되니까'라는 말로 일을 넘겼는지 세어보자. 그 횟수가 적으면 좋겠다. 답은 각자의 자리에 남겨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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