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과 장자의 '쓸모없음'의 지혜

퀄컴·디즈니+·ASML의 뉴스로 본 플랫폼 시대의 이면을 장자의 '무용지용'으로 돌아본다. 표준화된 플랫폼 위에서 우리가 잃어가는 것들, 그리고 '쓸모없는' 시간의 가치.

오늘 아침, 스마트폰 알림이 울렸다

오늘(2026년 9월 2일) 아침, 나는 스마트폰 알림을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퀄컴이 신규 고성능 프로세서 2종을 공개하며 '지능형 연결기기' 대중화에 속도를 내고, 디즈니+에서는 '재벌X형사2'가 글로벌 시청 순위 1위에 올랐다는 소식,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3%대 급락한 가운데 ASML의 차세대 EUV 플랫폼이 처음으로 양산용 로직 제품에 투입됐다는 기사, KGM이 강남 로보택시에 2세대 토레스 EVX를 추가 투입한다는 뉴스, 그리고 빗썸이 가상자산 AI 리서치 플랫폼 '빗썸 AI'를 출시했다는 소식까지.

모두 '플랫폼'이라는 단어로 연결된다. 칩도, 콘텐츠도, 자동차도, 금융도 모두 플랫폼 위에서 움직인다. 그런데 문득 이 장면이 낯설게 다가왔다. 우리는 정말 그렇게 많은 것을 플랫폼 위에 올려놓고 살아가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 플랫폼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플랫폼의 시대, 우리는 그 위에 무엇을 짓고 있는가

사전에서 '플랫폼'을 찾아보면 '기차의 승강장'이라는 뜻이 먼저 나온다.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대합실, 그 위에 열차가 서고,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장소. 오늘날의 플랫폼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승강장이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디지털 공간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퀄컴의 새 프로세서는 무인단말기, 출입 통제 장치, 스마트 가전, 스마트 농업, 가정용 로봇, 운동기구까지 '하나의 플랫폼에 담았다'고 한다. ASML의 High-NA EUV 플랫폼은 반도체 제조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KGM은 자율주행 차량 플랫폼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플랫폼 위에 서서, 그 위에서 일하고, 소비하고,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잠깐, 이 '플랫폼'이라는 말이 주는 편안함 속에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플랫폼은 언제나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땅이다. 그 땅이 넓어질수록 우리가 걸어갈 길은 정해져 있다. 플랫폼이 '편리함'을 준다고 말하지만, 그 편리함은 우리가 그 위에 서 있을 때만 유효하다.

장자가 말한 '쓸모없음'의 의미

2천 년 전, 장자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플랫폼'을 이야기했다. 그는 '인간이 자연에 기대어 산다'는 것을 거꾸로 뒤집어, 자연이 인간에게 기대는 법을 말하려 했을까. 그의 일화 중 하나를 소개한다.

人皆知有用之用, 而莫知無用之用也 — 「莊子·人間世」

인개지유용지용, 이막지무용지용야

"사람들은 모두 쓸모있는 것의 쓸모는 알지만, 쓸모없는 것의 쓸모는 알지 못한다."

이 구절은 장자가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다, 길가에 우뚝 선 크고 아름다운 나무를 보고 하는 말이다. 목수가 보기에는 결이 고르지 않고, 가지가 뒤틀려 '쓸모없는' 나무. 그러나 장자는 그 나무가 '쓸모없음' 덕분에 도끼에 찍히지 않고 천 년을 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쓸모없음이 곧 제일 큰 쓸모라는 역설.

오늘날의 플랫폼은 어떠한가. 모든 것을 '쓸모있게' 만드는 플랫폼은, 그 쓸모를 끝까지 추구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플랫폼의 표면 아래, 장자의 나무가 자라다

플랫폼이 주는 편리함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단지, 우리가 그 플랫폼의 '쓸모없는' 부분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플랫폼은 곧 '표준'을 만든다. 모든 기기가 같은 규격으로 연결되고, 모든 콘텐츠가 같은 추천 알고리즘에 따라 흘러가고, 모든 자동차가 같은 도로에 오르고, 모든 투자자가 같은 정보를 받는.

그런데 여기서 잠깐. 우리는 모두 같은 승강장에 서 있지만, 각자 다른 곳으로 가는 열차를 타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가. 장자의 나무는 객줏집 주인이었고, 천 년을 살았다. 그가 쓸모없었기 때문이다.

플랫폼의 시대에 '무용의 시간'을 찾는 법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플랫폼을 거부하거나, 도피하라는 말이 아니다. 장자는 절대 도피를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세상이 정한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것에 대해 회의했다. 주역의 화택리괘(火澤暌卦)는 '서로 어긋남'에 대해 말하지만, 그 어긋남 속에서도 우주는 조화를 이룬다고 보았다. 마찬가지로 플랫폼의 표준화 속에서도 우리 각자의 '쓸모없는' 지점은 존재한다.

예를 들어, 플랫폼이 정해준 추천 콘텐츠 대신, 조금 불편하지만 오래된 책을 읽는 시간. 자동차가 정해준 길 대신, 걸어서 가는 길. 그 시간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시간이 우리를 '인간'으로 있게 한다. 우리는 모두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나 모든 것이 연결되고, 모든 것이 쓸모로 평가되는 시대에는.

우리는 플랫폼의 주인이 아니라, 순례자다

플랫폼은 결국 땅이다. 누군가는 그 땅을 관리하고, 어떤 이는 그 위에 건물을 짓고, 어떤 이는 그곳에서 음식을 팔고, 어떤 이는 그저 앉아 쉰다. 우리 모두는 그 땅을 일시적으로 빌려 사는 순례자일 뿐이다.

그 땅의 끝없는 평탄함이 우리를 안락하게 만들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땅이 어디로 향하는지 의심할 권리가 있다. 장자의 나무처럼, 우리도 그 땅 위에서 '쓸모없이' 서서, 땅의 경계를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하다.

無用之用, 方爲大用 — 내가 다시 묶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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